mai 1st, 2010 -
출처는 링크
Kontra Says:
Thu, Apr 22, 10 at 5:50 AM
Here’s an exercise for you:
1. Google the date Apple killed floppy disks
2. Google the date Dell killed floppy disks
3. Let d = #2 – #1
4. Name anything innovative that came out of Dell in d years: there’s your answer.
5. Just like tending a garden, if you don’t actively cull old technology, new tech doesn’t flourish.
avril 29th, 2010 -
아직 아이패드를 받지는 않았다. 그리고 내가 내 블로그에 어지간하면 IT 이야기를 하지도 않는 편이다. 그래도 아이패드에 대한 생각은 한 번 써봐야겠다다. 플랫폼 전쟁은 여전히 유효하며, 아이폰/아이패드가 일상생활에 끼칠 영향이 지대하기 때문이다.

아이패드가 어째서 생활을 바꿀까?
질문을 바꿔보자. 컴퓨터는 어째서 생활을 바꾸지 못했을까? 개인용 컴퓨터가 나온지 30년째이고, 관련 산업이 팽창하기는 하였지만 생각해 보자. 과연 생활이 ‘혁명적’으로 바뀌었나? 사무실의 서류가 깔끔해졌다는 것 외에 의미가 별로 없지 않나? 컴퓨터가 접시를 닦아주지도 않고, 청소를 해주지도 않는다. 컴퓨터는 80년대에 새로 추가된 하나의 ‘여가용 기기’, 혹은 ‘사무용 기기’일 따름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의 생활을 바꾼 것은 컴퓨터가 아니다. 인터넷이다. 인터넷때문에 컴퓨터가 빛을 발했고, 휴대폰도 인터넷이 아니었으면 휴대용 전화기와 별다를 것이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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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vril 5th, 2010 -

위 깃발이 유럽 석탄철강공동체의 깃발이다. (처음 버전은 아니다. 처음에는 별이 6개였고, 각기 6개 회원국-베네룩스, 프랑스, 영국, 서독, 이탈리아-을 뜻하였다.) 서유럽연합을 만들어두기는 했지만 프랑스는 베트남때문에 정신이 없는 상황이었다. 일단 독일에 대한 전승국으로서 전쟁물자를 라인란트 지방에서 빼올 수는 있었지만, 군사안보조직체(서유럽연합) 외에 초국가조직이 필요했다. 조약 하나만으로는 휴지조각이 될 수 있음을 2차대전에서 잘 배웠기 때문이다. 결국 로베르 슈만의 제안에 따라 ECSC가 세워지게 된다. 최소한 철강과 석탄만이라도 제어를 해 두어야 독일이 딴 마음을 품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ECSC가 탄생한다. ECSC는 파리조약의 종료로 인해 2002년 해체되었지만, 그 모든 것을 EC가 흡수하였기 때문에 실질적인 기능은 지금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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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s 29th, 2010 -

브뤼셀 조약은 결국 서유럽 연합으로 이어진다. (1) 소련의 위협에 집단 대처해야 할 기구가 필요했고, (2) 그것은 유럽의 기구이어야 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문제, 2차대전 전범국의 유럽통합이 있었다. 특히 독일의 연합국 지배가 끝나면서, 그를 대체할 조약이 필요했고, 여기에 (1)과 (2)의 이유가 더해졌기 때문에 서유럽 연합이 탄생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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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s 23rd, 2010 -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났다. 문제는 독일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은 물론 제2차 세계대전은 결국, 전세계 대 독일의 전쟁 구도였기 때문이다. 이런 독일을 가만 놔두면 안될 일이었다. 그래서 동서독 분할, 베를린 분할(및 봉쇄)이 일어났지만, 제일 큰 피해국이었던 프랑스와 영국은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이들이 생각한 것은, 독일이 다시 일어났을 때 자동적으로 군대를 동원하는 체제였다. 그래서 양국 외교부장관이 출동한다. 비도와 베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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