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 대한 의문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역사 시대 이래로 계속 변방이었던 독일에 유독 19~20 세기에 걸출한 인물들이 어떻게 나올 수 있었는지? 겨우 일류 국가를 만든 국민들이 어째서 갑자기 미쳐버렸던 것인지? 과연 공공 교육 덕택일까? (물론 이 영화에 그러한 ‘공공성’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
유럽 석탄철강공동체(ECSC/CECA)
위 깃발이 유럽 석탄철강공동체의 깃발이다. (처음 버전은 아니다. 처음에는 별이 6개였고, 각기 6개 회원국-베네룩스, 프랑스, 영국, 서독, 이탈리아-을 뜻하였다.) 서유럽연합을 만들어두기는 했지만 프랑스는 베트남때문에 정신이 없는 상황이었다. 일단 독일에 대한 전승국으로서 전쟁물자를 라인란트 지방에서 빼올 수는 있었지만, 군사안보조직체(서유럽연합) 외에 초국가조직이 필요했다. 조약 하나만으로는 휴지조각이 될 수 있음을 2차대전에서 잘 배웠기 때문이다. 결국 로베르 슈만의 제안에 따라 ECSC가 세워지게 된다. 최소한 철강과 석탄만이라도 제어를 해 두어야 독일이 딴 마음을 품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ECSC가 탄생한다. ECSC는 파리조약의 종료로 인해 2002년 해체되었지만, 그 모든 것을 EC가 흡수하였기 때문에 실질적인 기능은 지금도 하고 있다.
서유럽 연합(WEU/UEO)의 출범
브뤼셀 조약은 결국 서유럽 연합으로 이어진다. (1) 소련의 위협에 집단 대처해야 할 기구가 필요했고, (2) 그것은 유럽의 기구이어야 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문제, 2차대전 전범국의 유럽통합이 있었다. 특히 독일의 연합국 지배가 끝나면서, 그를 대체할 조약이 필요했고, 여기에 (1)과 (2)의 이유가 더해졌기 때문에 서유럽 연합이 탄생하게 되었다.
덩케르크 조약(Traité de Dunkerque)과 브뤼셀 조약(Traité de Bruxelles)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났다. 문제는 독일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은 물론 제2차 세계대전은 결국, 전세계 대 독일의 전쟁 구도였기 때문이다. 이런 독일을 가만 놔두면 안될 일이었다. 그래서 동서독 분할, 베를린 분할(및 봉쇄)이 일어났지만, 제일 큰 피해국이었던 프랑스와 영국은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이들이 생각한 것은, 독일이 다시 일어났을 때 자동적으로 군대를 동원하는 체제였다. 그래서 양국 외교부장관이 출동한다. 비도와 베빈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