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미래에는 어른이 두 명 나온다. 하나는 수건세탁 공장 사장이고, 다른 하나는 마모루의 아버지다. 그리고 아버지의 직업은 수리공이다. 여기에서 벌써 힌트가 다 나온다. 일본을 발전시킨 두 주역이 나오기 때문이다.

수건세탁은 가라오케 외에 별다르게 일본이 만든 물건이 없는 현실을 가리킨다. 남들이 만들어 놓은 물건을 작게, 혹은 더 싸게 만들어서 갖다 판 덕분에 일본이 경제성장을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장은 CD를 요구한다. 갖다주자 낚어 채가듯이 가져간다. 이것도 가라오케를 상징한다고 하면 너무 오바일까? ㅎ
그리고 젊은 주인공 둘은 모두 이 공장에 ‘임시직’으로 일하고 있다. 제조업으로 일으킨 일본 경제가 점차 임시직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가리킨다. 너무나 뻔하기는 한데, 이들은 반항하지 않는다. 시키는대로 할 뿐이다. 원래가 임시직들은 그럴 수 밖에 없다. 노조가 없기 때문이고, 그나마 있는 노조도 자기들 편이 아니다. 하지만 사장을 죽인들 해결이 되는가?
그래서 수리공 아버지가 필요해진다. 무엇이든지 수리해야, 일본을 수리해야 밝은 미래가 보장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수리공 아버지는 잊은 아들을 되찾는다. 임시직 아들을 정규직처럼 일하게 해 준다. 제아무리 해파리나 쫓아다니는 아들이라 하더라도 상냥하게 맞이해준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바로 얘네들이다.

처음에는 잠시 등장해서 한 번 놀아주는 엑스트라인줄로만 알고 있었다. 그러나 체게바라 티를 똑같이 입고 거리를 행진하며 마지막 장면을 장식해주시니, 달리 생각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이제까지의 밝은 미래가 어두운 미래로 바뀌기 때문이다.
전혀 생산활동에 종사하지 않으면서, 체게바라 티를 입고 우쭐대니 얘네들은 독을 품은 해파리가 아닐 수 없겠다. 생산활동이란 말을 꺼내기는 했지만, 생산까지 갈 것도 없다. 백수는 자본주의이건 사회주의이건 암세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즉, 저항의 이미지만을 따 온 심심한 청소년들이 있는 한, 얘네들이 아무리 하얀색 옷을 입었다고 하더라도 일본의 미래는 밝을 수가 없다.
누가 보아도 거리에서 얘네들을 만나면 거리를 비킬 수 밖에 없다. 얘네들은 임금과 연금, 노동을 모조리 다 희생해야 할 세대이다. 멀리 기다릴 것 없다. 한 10년 후의 일본은 지금에 비해 어떻게 변할지 기대해 볼 만 하다. 부정적으로 말이다.
미국에서도 Bright Future라는 제목으로 나왔군요. Netflix에 있음 좋겠네요. 그나저나 오다기리 조, 아사노 타다노부… 영화에 집중이나 할 수 있겠는지..:D
집중할 수 없습니다. -_-;;
하지만 밝은미래는 꼭 봐야할 영화는 아닌 듯 하지만… 보시면 좋습니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