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이 죽어줬으면 좋겠어요. »
모데라토 칸타빌레의 시작은 한 사내가 여자를 총으로 쏴죽이는데서 시작한다. 묘한 점은, 여자가 미소를 지었다는 것.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까? 여기에 대해, 아들을 피아노학원으로 데려다주던 공장장의 아내와, 전직 노동자 사내가 술집에서 거의 매번 만나 설명을 시도한다…가 줄거리다.
« 설명을 시도한다 »라고 하였다. 이 둘이서, « 눈에 보이는 », 혹은 « 실질적인 » 불륜(불륜이란 게 세상에 있나?)에 빠지는 것이 아니다. 둘이 서로를 사랑하게 되었는지가 중요하지 않다. 그저 앞서의 치정살인에 대해 설명을 시도하는 것 뿐이라고 봐야 옳다. 세상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두 사람, 이 두 사람이 완벽하게 앞서의 사건을 재현하는 것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매번, 공장의 퇴근 사이렌이 울린다.
그런 재현만으로 소설이 이뤄질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할 법한데, 누보로망이라는 아주 빠다스러운 단어를 갖다대지 않더라도 가능하다. 전혀 같지는 않지만, 아멜리 노통브도 마찬가지 부류라고 할 수 있잖은가. 핵심은, 그러한 재현을 왜 하는가. 왜 부인은 그 사내를 만나려 하는가. 어째서 둘은, 그런 어둡기 짝이 없는 대화를 하는가이다.
사실 한국어판과 불어판의 표지는 똑같은데, 저 위의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표정만 봐도 알 법하잖을까 모르겠다. 왜 우리는 사랑을 할까. 왜.라는 단어를 굳이 들먹여야 마음이 편해질 거 같은, 이런 아이러니는 « 설명 »을 시도할 수가 없다. 책을 읽고나면 굉장한 느낌이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