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택할 것인가. (Quoi en choisir)

décembre 15th, 20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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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포스팅을 올린 적이 있다. 이런 근본적인(!) 의문은 지금도 유효하다. 기업의 활동 목적은 거의 100% 초과 이윤 달성에 있다고 보기때문에, 정상이윤만 올릴 수 있는 상황이 계속되면, 기업은 다른 시장으로 옮겨 가거나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방법밖에 기업을 유지할 방법이 없다. 문제는 이게 수학적으로도 증명이 되느냐이다. 왈라스 균형으로는 아무 것도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에 더더욱 의문이 간다. 경제학에서 사용하는 수학적인 사고가 실제 생활과도 대부분 들어 맞지만, 이건 아직 내가 아는 한도 내에서 나오지 않았다.

다른 문제도 있다. 거시 경제학에서 말하는 ‘유효 수요’이다.

케인즈는 일찌기 “소비는 미덕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자본주의를 꿰뚫고 있는 말이랄 수 있다. 거시 경제학에서의 기본식을 생각해 보자.


Y=C+I+G


정상이윤만 도출되는 상황, 새 시장 창출이 안 되는 상황에서 기업은 I를 줄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효율성’이나 ‘생산성’을 위해 ‘정리해고’, 혹은 더 좋은 말로 ‘명예퇴직’을 시키거나 아예 공장을 옮겨 버린다. 그렇다면 C는 떨어지게 되어 있다. 소비는 소득의 함수이기 때문이다.

자, I는 정체해 있고, C는 떨어지기 시작한다. G를 올려야 할 때이다. 그런데 현대 선진국들 중에서 재정 적자가 아닌 나라가 몇 나라나 있을까? 쉽게 올릴 수 없다. 미국이 금리를 연일 올리는 이유도 자신이 아직은 여력이 있다고 생각해서이다. 달러야 찍어내면 되잖은가. 어차피 세계 전체에 유통시킬 것이니, 정부가 보증을 선 일종의 어음(?)인 달러는 미국을 지켜주는 셈이 된다. (아울러 밝히건데, 지금 미국 따라서 금리 올리는 산업국가는 한국이 거의 유일하다. 한국의 재정이 그나마 낫기 때문이리라. 나머지는? 눈뜨고 당할 수 밖에. 특히 일본이 더 심할 거라. 엔화달러 환율은 온갖 거짓말(?!)에도 불구하고 계속 올라가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만약 경기가 활성화되지 못한다거나(즉, 세수가 줄어든다.)부동산 거품 폭발(이미 기미가 보인다. 미국 이야기다.)이 난다거나 해서 금리가 더 이상 올릴 수 없게 되어버린다면, 미국은, 아니 이 세상은 어떻게 될까?

종말을 믿으십니까

ㅎㅎ 개인적으로는 대전쟁이 다시금 일어나서 소위 ‘창조적 파괴’를 하잖을까 싶다. 그리고 그 시발점은 중국이나 중동 지방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고 말이다. 그럴 수 밖에 없다. C를 늘리기 위해 갑자기 기업가들이 일치단결하여 소득을 소비자들에게 돌릴, 유효수요를 일부러 늘려줄 가능성은 거의 0%이다. 그것은 ‘빨갱이식’ 처방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강한 정부를 원치 않는다. 그렇다면 결국 문제는 영화, ‘혈의 누’에서 던졌던 그 질문으로 돌아간다.

굶는 백성들에게 소작료를 받는 것이 옳은가, 그른가? 어떻게 답할 것인가?

Umberto Eco를 둘러싼 번역 이야기

octobre 3rd, 20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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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은 반역이다라는 말이 있다. 나는 그 어구를 고종석의 “서얼단상”에서 처음 보았었고, 그 치밀함에 감동(?)을 받았었다. 그 말 자체가 좋은 것도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번역은 반역이라는 말(Traduttore, Traditore)을 만들어낸 일본의 번역가들때문이었다. 따지고 보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Tomarrow is another day! »라고 외치는 스칼렛의 말이 “내일에는 내일의 태양이 뜰 거야!”로 번역됐다는 사실은 일본의 속담, “明日は明日の風が吹く(내일은 내일의 바람이 분다.)“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아시련가?

traditore배신감을 느끼실지 모르겠다. ㅎㅎ 그 모든 것이 일본어로 일단 번역됐던 것을 “重譯“해서 또다시 한글화시켰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일본어와 한국어의 구조가 얼추 비슷하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받은 사실에 대한 ‘수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지금 또한 마찬가지이다. 이 책, “움베르토 에코를 둘러싼 번역 이야기”도 일본에서 나온 책을 한글로 바꾸었기 때문이다. 국내 이탈리아어 전공자가 흔치 않을 뿐만 아니라, 있다 하기손 치더라도 뎅그러니 언어만 알고 에코를 논하기는 벅차지 않나 싶다. 차라리 이런식으로 일본에서 짜깁기(?)한 책이라도 들여오는 편이 낫다는 이야기다. 번역은 여전히 고달프고 배고픈 일이라서 그러하다. 우리가 어디 원본은 커녕, ‘제대로 된 번역’을 받아들일만한 준비가 되어 있던가? 여전히 네가티브다…

하지만 오른쪽의 “문화의 오역”이라는 책은, 이 할아버지 너무 오바하지 않으셨나 싶다. 오로지 영어만 아는 자들의 말장난들일 뿐이다. ㅎㅎ 그리스 고전들은 그렇다 치고, 이윤기씨의 ‘장미의 이름’ 번역을 비난하려면 적어도 원본을 대조하셔야 하잖았을까? 그저 영어판에서의 오역을 일일이 거론하는 것은 일단 뜬 사람 잡아 내리기 외에 아무 것도 아닌 것 같다. 나이를 생각하면 걍 평소에 밉보인 넘 하나 잡아보자 아니었을까? ㅋ 실제로 오역이라고 한들 그게 무어 중요한가? 에코의 소설 번역본들이 많이 나왔지만, 개인적으로는 이윤기씨 번역본이 제일 마음에 든다. 좀 옛날 어투의 말이 많기는 하지만 에코의 장난기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만 하게 했기 때문이다.

스칼렛이 갑자기, “내일은 다른 날이야!”라고 외치는 것보다 차라리 일본 속담을 응용시킨 일본어 번역이 어울리듯이 말이다. (여담인데… 예전에는 영화도 일본을 통해 들여왔으니 저렇게 번역이 된 것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한 마디로 이 책은 ‘선정적’인 책이다. 세부적인 오역을 폭로하는 일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장미의 이름은 그런대로 좋게 되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사실 위, “움베르토 에코를 둘러싼 번역 이야기”도 장미의 이름을 둘러싼 서구 번역자들의 발표문을 모아 놓은 책이다. 각자의 종교적인 기반, ‘지적인’ 독자의 기반, 지식의 기반, 언어의 기반때문에 번역의 문제가 안 생길래야 안 생길 수가 없었다. 제일 흥미로웠던 부분은 한국어와 어순이 얼추 비슷한 헝가리어 번역자의 글이었는데, 덕분에 헝가리어가 실제로 어떠한지 엿볼 수 있으니 소득이라면 소득이랄 수 있다.

그런데 번역이 실은 남 이야기가 아니다. 나 자신도 엄청나게 많은(?) 번역을 하고 있기는 한데, 개인적으로는 역시 ‘정숙한 추녀’보다는 ‘부정한 미녀’가 낫다고 생각한다. 다행스럽게도(?) 내가 하는 번역은 대부분 기술쪽 칼럼이나 딱딱한 신문 기사(?)이기 때문에 그런 딜레마에 부닺히는 일이 상대적으로 적다. 이것이 문학이라면? 정말 돌아버릴 것이다. 다시 위 주제로 돌아가서, 문학은 문학가들이 번역해야 그나마 낫다. 나처럼 잡스러운 글에 능한(?) 사람은 그저 잡스럽게 번역하면 된다. ㅎㅎ 우찌됐건 번역으로 일어난 근대이다. 아직도 일본의 영향아래에 심각하게 파묻혀 있기는 하지만 가끔씩 번역 논쟁까지(!) 벌어지는 걸 보면 그래도 발전을 하긴 하는 것 같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