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히 봤다 싶은 영화가 있다. 욕이 아니다. 칭찬할 일이다. 정말로 칭송해야 마땅하다. 그만큼 속을 깊숙이, 갈기갈기 찢어놓기 때문이다. 내가 그 만큼 고통을 느껴 봐서일까? 고통을 느껴봐야 이 영화의 잔인함, 그리고 그 날것의 마음을 알 수 있어서일까? 영수와 은희는 존나게 사랑했었다. 존나게.
정말 이 영화는 보면서 꺼이꺼이, 지금도 생각하면 눈물이 날 정도인데, 통곡을 하면서 봤었다. 그래. 당연히 대사가 똑같지는 않다. 그러나 유사한 상황은 얼마든지 있었고, 유별난줄 알았던 상황도, 생각해 보면, 모두들 경험할, 그런 상황이었다. 그리고 잔인함. 잔인할수록 좋다고 한다. 실제로 잔인하게 대처하는 사람들, 많다. 그래서였을까? 영수의 잔인함이나 은희의 매정함은 기가 막히게 어울린다.
왜?라는 질문은 사실 의미가 없다. 알아서 무엇하리? 알면 바뀔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그 때 안그랬다면 어떻게 됐을까라는 의문, 혹은 후회 자체는 정말 그 가치가 없는, 의미가 없는 것이다. 운명론자일지라도, 의지론자일지라도, 겸손하여라. 신이 개입하건, 스스로 개척하건, 사랑은 자기가 통제할 수 없다. 제멋대로 나아가게 마련이다.
보고 싶지 않다. 이미 충분히 경험하였다… 라고 멋대로 정해버리면 나을까? 그냥 포기해버리고, 쓸쓸히, 외롭게 살아가면 해결될까? 잊는 것은 배려일까, 복수일까? 어떻게 여기건, 답을 내리건 시간은 흘러가고, 희망, 절망 속에서 희망이 솟아 오르기는 한다. 희망… 난 감히 희망을 가져도 될까? 하느님. 희망을 가져도 될까요? 하느님…
행복
괜히 봤다 싶은 영화가 있다. 욕이 아니다. 칭찬할 일이다. 정말로 칭송해야 마땅하다. 그만큼 속을 깊숙이, 갈기갈기 찢어놓기 때문이다. 내가 그 만큼 고통을 느껴 봐서일까? 고통을 느껴봐야 이 영화의 잔인함, 그리고 그 날것의 마음을 알 수 있어서일까? 영수와 은희는 존나게 사랑했었다. 존나게.
정말 이 영화는 보면서 꺼이꺼이, 지금도 생각하면 눈물이 날 정도인데, 통곡을 하면서 봤었다. 그래. 당연히 대사가 똑같지는 않다. 그러나 유사한 상황은 얼마든지 있었고, 유별난줄 알았던 상황도, 생각해 보면, 모두들 경험할, 그런 상황이었다. 그리고 잔인함. 잔인할수록 좋다고 한다. 실제로 잔인하게 대처하는 사람들, 많다. 그래서였을까? 영수의 잔인함이나 은희의 매정함은 기가 막히게 어울린다.
왜?라는 질문은 사실 의미가 없다. 알아서 무엇하리? 알면 바뀔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그 때 안그랬다면 어떻게 됐을까라는 의문, 혹은 후회 자체는 정말 그 가치가 없는, 의미가 없는 것이다. 운명론자일지라도, 의지론자일지라도, 겸손하여라. 신이 개입하건, 스스로 개척하건, 사랑은 자기가 통제할 수 없다. 제멋대로 나아가게 마련이다.
보고 싶지 않다. 이미 충분히 경험하였다… 라고 멋대로 정해버리면 나을까? 그냥 포기해버리고, 쓸쓸히, 외롭게 살아가면 해결될까? 잊는 것은 배려일까, 복수일까? 어떻게 여기건, 답을 내리건 시간은 흘러가고, 희망, 절망 속에서 희망이 솟아 오르기는 한다. 희망… 난 감히 희망을 가져도 될까? 하느님. 희망을 가져도 될까요? 하느님…